2006년 7월 29일 (토)
7:00경에 출발,
한참 가니 어제 잘 못 길을 들었던 삼거리가 나온다.
어제 왜 내가 왼쪽에 달려있는 표시기들을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표시기를 잘 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독바위를 거쳐 쑥밭재에 도착하니 9:00가 넘었다.
그런데 표시기가 직진 쪽은 한두 개 붙어있고 왼쪽 샛길에 많이 붙어 있다.
능선 방향으로는 직진이 맞는데
읽어본 태극종주기에는 모두 직진 아니면 왼쪽 방향으로 가라고 되어있었기에 더욱 혼란스럽다.
이때에는 PDA도 소용이 없지 않은가?
한 참을 망설이다, 내 눈을 믿고 직진쪽으로 좀 가다가
그래도 자신이 없어 다시 돌아와 표시기들을 자세히 보니,
왼쪽의 것들 중 하나에 광주 한 산악회의 표시기에 태극종주라고 쓰여 있고
다른 하나에는 태달사(오케이마운틴의 카폐, 태극을 닮은 사람들)라고 쓰여 있지 않는가.
초보의 눈보다 산꾼들의 표시기를 믿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조금가다 아이나비로 확인해 보기로 하고 왼쪽 길을 택한다.
10분 정도 내려가다 아이나비를 켜보니,
우리가 독바위와 국골사거리를 잇는 직선상에 있기에 옳은 길임을 확신하고 한참을 내려간다.
그런데 아까부터 오른쪽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이상하다.
능선을 갈려면 저 물소리를 내는 계곡을 지나야 하지 않는가?
게다가 내려가기만하고 가는 길을 가로 질러 물이 졸졸 흐르는 곳들이 나타난다.
멈추어서 아이나비를 켜보니 독바위와 국골사거리 직선상에서 꽤 밑으로 내려와 있다.
또 잘못 들어섰구나.
아침도 못 먹었는데, 하는 수 없이 거기서 자리 잡아 아침 먹기로 하고 한다.
‘바람’이 어설픈 초보 믿고 따라왔다가 많이 힘든 모양이다.
아마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을지 모른다.
아침 먹고 나서, 한잠 잘테니 깨우지 말란다.
오늘 장터목까지만 가도 되니까 하는 생각에 그리하도록 하였다.
12:00가 다되어 그 곳을 떠나 되돌아오는데, 아까 내려왔던 길이 아니다.
계곡 옆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청이담고개로 직접 가는 길이었다.
청이담고개 직전 계곡에서 세수하고 물 다시 가득 채우고 출발하니 13:00이다.
국골사거리를 향해 가는데,
‘바람’이 나의 느린 산행속도에 맞추어 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 지는 모양이다.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국골사거리 직전 오르막을 한참 오르다 좀 쉬는데, 그냥 앞질러 간다.
쉬면서 아이나비로 위치를 확인하니 국골사거리와 거의 같다.
국골사거리에서 ‘바람’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하고 5분여 걸려 쫓아가보니,
국골사거리에 아무도 없다.
손전화 해도 받지 않는다.
사거리에서 길 갈라짐이 뚜렷해,
제대로 왼쪽 길을 택해서 가고 있겠거니 하고 산행을 계속한다.
한 5분 쯤 갔는데, 손전화 진동이 울린다.
‘바람’이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국골사거리에서 국골쪽으로 직진했단다. 아이고 맙소사.
다시 국고사거리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꺾어서 오라고 하니, 드디어 폭발해 버렸다.
심통이 좀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쫑알쫑알.. 야단 무지 맞는다.
아이나비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땀에 젖은 몸이 식어 추워 오는데, ‘바람’이 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전화하였더니, 국골사거리에 있다며 전화 끊는다.
속으로 ‘여자들이란’ 하면서도, 배낭 놓아두고 다시 내려가니 올라오고 있다.
내가 마중나간 것으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려졌기 바라며 말없이 산행을 계속한다.
17:00 넘어 하봉으로 생각되는 봉오리에 올라서니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 셋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리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치료하는 사람이 일행인 줄 알고 옆에 털썩 주저앉아 “여기가 하봉이냐?”고 물었더니,
옆에 다른 사람이 머뭇거리며 저기 보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치료하던 사람이, “여기가 산행금지 구역인 것을 아시고 계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을 찬찬히 보니
으악!! 이게 누구야?!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관리인이었다.
이런! 일이 자꾸 꼬이네.
집중단속기간 동안 하봉 능선을 단속하던 중, 정강이에 찰과상을 입은 등산객을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료 끝내기를 기다려, 한참동안 옥신각신하며 사정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홍보차원의 경고로 처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도착하니 19:00가 다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관리인이 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장터목산장에 사람들이 꽉 차서,
수칙에 따라 로터리산장으로 하산시키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그리하라는 것이다.
야간에 가파른 길을 내려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항변도 소용이 없었다.
관리인은 자기의 소임에 충실할 뿐이다.
중산리 사무소에 근무하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의 모든 공무원이 그 관리원 같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관리공단 측에서는 등산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수칙이 옳은 것인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밝은 낮같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안전하게 갈수 있는 로터리산장에 2시간 30분 걸려 21:30에 도착하였다.
깜깜한 밤에 작은 헤드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가파른 너덜 길을
거의 두 시간 동안 내려갔어야 했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고 늦어도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다다를 수 있는 장터목산장이 만원이라고 로터리산장으로 유도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실제로 ‘바람’이 큰 바위에 붙어서 돌다가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돌이 없는 곳에 궁둥이 쪽으로 떨어져 화를 면하였다.
종주를 계속할 것인지는 내일 일어나서 결정하기로 하고,
‘바람’을 대피소에서 자게하고 나는 바깥에서 비박하였다.
내일 지리산 심층 산행하는 귀연의 대장 청산님에게 단속 조심하라고 손전화를 계속 시도하였으나, 신호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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