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8일 (금)
이제부터의 산행은, 초보의 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출발하기 까지 걸린 시간이다.
‘바람’이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될 수 없다.
5:30에 기상했으면 늦어도 6:30에 출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식사 후 짐을 챙기고서는 무슨 일을 하나 하려면 배낭을 전부다 풀었다 쌓는 일이 반복되었다.
해야 할 일이 한 번에 다 생각나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배낭 챙기는 요령도 문제이다.
무게를 줄이려고 새로 산 배낭에는 옆 주머니가 전혀 없다.
예상보다 저렴한 것이, 아마 구형인가 보다.
밤머리재를 7:40에 출발했으나,
바로 나타나는 헬기장에서 햇볕이 너무 따가운 걸 알고
그때서야 배낭 내려놓고 선크림을 바르느라 또 지체, 늘 이런 식이다.
10kg 가까이 가는 배낭이 역시 부담스럽다.
어찌하여든 간에 도토리봉에 도착하니 8:33분이다.
졸리다. (산행이 힘들 때 나타나는 나의 대표적 증상)
조금 쉬고 동왕등재에 오르니 10:40이다.
예상 산행시간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그런데도 졸린 것은 마찬가지다.
벌렁 드러누워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 가려하니,
‘바람’이 한숨자고 가자고 한다.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남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아가씨이다.
‘바람’도 나의 산행속도에 자신의 페이스를 잃은 듯하다.
한숨자고 출발하려 하니 11:50이다.
‘바람’은 7월 31일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고..
태극종주포기가 불가피하다.
어차피 3박4일의 태극종주는 불가능하니, 새재로 빠지자는 나의 제안에,
자기는 중간에 내려가도 괜찮으니 나더러 태극종주를 마치라고 한다.
이런 천사표 아가씨가 또 있을까?
그래서 4박5일 종주로 계획을 수정하여,
오늘의 목표지점을 비박하기 좋다는 청이담고개로,
그 다음인 셋째 날에는 세석산장 또는 벽소령으로 잡고,
넷째 날에는 저녁 전에 성삼재에 도착하여 자동차를 이용하여 구례나 인월로 내려가 ‘바람’을 대전으로 보내고
나는 거기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에 성삼재로 다시 올라와 태극종주를 마치는 걸로 하였다.
그리고 여유 있게 걸어 왕등재 습지에 도착하니 14:00이다.
식수로 접합한지 맛을 보아가며 10분정도 내려가 물을 떠오고, 한 시간만 쉬고 갈 생각이었는데
짐 꾸리면서 장갑 한 짝이 없어져 물 뜨다 놓고 온줄 알고,
찾으러 다시 물 뜨러간 곳들을 들러 허탕치고 돌아와 출발하니 15:30이 넘었다. (나중에 배낭속에서 찾았다.)
청이당고개를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충분히 갈 것 같다.
새재에 도착, 계속 갈 것인지 한참 망설이다 출발하니 16:40이 넘었다.
새봉에 도착하니 18:20 그리고 정신 없이 한 시간가량 왔는데 이상하다.
쑥밭재도 못 만났고 물소리도 안 들린다.
잘 못 온 것 같아, GPS 일체형 PDA로 확인해 보니
독바위에서 정 북쪽으로 한 참 올라와 있는 것이다.
얼음골 가는 길을 택한 것 같다.
그때서야 ‘바람’이, 아까 길이 갈라지는데
내가 그냥 오른쪽을 택하길래 맞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애구머니나!
날은 어두워지는데 하릴없이 다시 길을 되돌아오며 근처에 비박하기 적당한 곳을 찾았다.
마실 물도 없는데, ‘바람’이 가져온 양파즙이 몇 봉이 있어 다행이었다.
뜻하지 않게 정말 비박다운 비박을 하게 되었다.
깔판 깔고 판초 침낭 덮개로 이용하니 별 걱정이 없다.
‘바람’은 먹을 생각이 없다며 침낭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잠들었다.
나는 침낭 속에 들어가 엎드려 누워, 육포, 소시지 등을 안주로 법성포 토종을 한잔하고 잠드니 22:3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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