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따라

[스크랩] 초보의 태극종주 실패기 (5) - 마지막 날

언제나 KHAN 2012. 2. 3. 23:17
 

2006년 7월 30일 (일)

아침에 일어나니 개운하다.

발바닥이 좀 얼얼할 뿐, 다시 천왕봉으로 올라가 종주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손전화를 다시 켜보니 통화가능 표시다.

청산님에게 전화하여 어제 관리인에 의한 강제 하산 당해 로터리산장에 있다며 조심하라 이르니,

중산리로 내려 올 거냐고 묻는다.

“아직 모르겠다.” 하고 전화 끊고, 궁리를 해 본다.

‘바람’이 산행을 계속하겠다고 하면,

정오까지 천왕봉에 올라가 귀연과 만나 점심 먹고

‘바람’은 귀연의 나머지 산행에 합류하여 대전으로 가고,

나는 태극종주를 5박6일로 계속하면 될 것 같다.

4박을 벽소령에서 하면,

5박 째에는 저녁 전에 인월로 내려가 영양보충과 함께 충분히 쉬고

그 다음날 배낭을 두고 포켓 배낭에 물과 행동식 약간만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깜찍한 생각을 해 본다.

‘바람’에게 어쩔 거냐고 물으니,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내려가자고 한다.

자존심 강한 아가씨가 그런 말 하다니, 힘들긴 되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침 해먹고, 느긋하게 자연학습원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는데, 끝까지 초보 티를 낸다.

이정표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산장에서 하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갈라지는 길이 있겠거니 하고 가는데, 가도 가도 갈라지는 길이 없다.

이상해서 뒤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산장에서 갈라진단다. 애구..

‘바람’은 산장에서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단다.

한숨자고 싶단다.

이놈의 하산 길 주위에서는 그럴 만한 곳이 없다.

한참을 내려가니 사람들이 쉬어 갈만한 넓은 바위와 산죽 밭 사이에

한 사람 정도 누울 공간이 있어 ‘바람’은 깔개 깔고 판초 덮고 잔다.

나는 바위에 드러누워 몸의 열기를 식히며 쉬는데,

아까 어기적대며 내려오던 젊은이가 옆에 와 털석 앉으며 말을 건넨다.

어제 04:00에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장터목에서 하룻밤 자고 천왕봉 들렸다 내려오는 길인데,

무릎이 왜 이렇게 아픈 줄 모르겠단다.

아무에게나 쉽게 말을 걸며 붙임성이 좋은 친구인 것 같다.

한참동안 머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바람’은 그 청년이 가고 난 뒤 한참 후에야 깨었다.

중산리에 점심때 도착하여 맥주와 감자전, 손두부로 점심을 때우고,

운 좋게도 진주에서 온 택시를 만나 싸게 진주시외터미널까지 가 대전으로 오니 16:00 조금 지났다.

‘바람’와 헤어져 집에 도착하니 16:40이다.


후기:

이번 태극종주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많은 것을 느꼈고 얻었다.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튼 죽을 똥 말 똥 비슷하게 고생했으면서도 그것을 즐기는 산꾼들의 정서를 조금은 맛본 것 같다.

이번 방학이 끝나기 전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 [대전]귀연산우회
글쓴이 : kh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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