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쓰기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더니 반년이 지나도록 미루고 있다.
이제라도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아예 포기하게 될 것 같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미루고 있는 스스로를 꾸짖고 달래어
이제야 자판을 두드린다. (2007년 11월에..)
칸의 백두대간 7구간 (화령재-비재-늘재)
언제: 2007.04.28-29 (1박2일)
누구누구: 김만제, 서동립, 한규광
산행시각:
첫째 날: 화령재/15:38 - 16:25/산불감시초소 - 16:59/봉황산/17:09 - 18:18/비재
둘째 날: 비재/07:02 - 08:13/못재 - 08:53/갈령삼거리 - 09:14/형제봉/09:34 - 10:08/피앗재 - 11:10/725봉/11:17 - 11:54/전망바위(점심식사)/12:30 - 13:11/천황봉/13:19 - 14:31/신선대/14:52 - 15:28/문장대/16:08 - 17:41/입석바위(698봉) - 18:13/밤재 - 18:45/692.2봉/18:54 - 19:35/늘재
지난주 제자들의 좌충우돌 - 녀석들이 어느새 날 닮아가는 모양이다. ㅋ ㅋ -
해프닝으로 당초의 목표인 비재까지 가지 못하고 화령재에서 끊는 바람에
이번 구간은 비재에서 늘재까지...
제자들은 이번 토요일이 일토(일하는 토요일)란다.
하루산행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렇다고 밤재에서 끊으면, 그다음 구간이 힘들 것 같고...
제자들에게, 일찍 끝나는 토요일 근무를 조금 더 앞당겨 끝내라고 윽박질러,
첫째 날 산행을 비재까지만 하는, 짧은 1박2일 산행을 하기로 한다.
하기야 온 1박2일 산행으로는 거리가 짧아 어정쩡했었는데 잘 되었다.
첫째 날
제자들이 오전 근무만하고 와 재촉하는 바람에 점심도 굶고 출발한다.
15:00 다 되어서 화서면에 있는 문화 여인숙에 도착한다.
배고프다는 만제의 성화에 점심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던 동립도 식사를 같이 한다.
15:37 봉황산 들머리로 들어선다.
오늘은 비재까지만 가기로 해서인지 모두 느긋하게 가는데도 예상한 것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50분도 안 걸려 산불감시소다.
그리고 30분 남짓에 봉황산 정상이다.
2시간 40분 만에 봉황산 넘었다. 최상의 컨디션이다.
화서면으로 택시를 부를까 하다. 얻어타기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은 것인지 얼마 자니지 않아
공사장 인부들을 태우고 갈령 쪽으로 가던 봉고를 얻어 타고 49번 지방도와 만나는 곳까지 간다.
오히려 차 왕래가 많은 49번 도로에서 한참 걸려 SUV를 얻어 탄다.
셋이서 같이 가며 세워달라고 해서 안 되는 것 같아,
거리를 두고 한 사람씩 태워 달라는 사인을 보냈더니,
역시 착하게 생긴 만제의 사인에 뽑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SUV가 슨다.
중년 부인이 혼자 몰고 있었는데 집이 있는 마산으로 가는 중이란다.
혹시라도 땀 냄새가 시트에 밸까봐 등을 시트에 대지 못하고 궁둥이만 얹는다.
그런데 이차가 49번을 타고 가다 우리 차가 서 있는 봉황산 들머리 쪽으로 가지 앉고
상주 쪽으로 직진하는 바람에 25번 국도와 만나는 곳에서 내려 또 한 번의 얻어타기를 한다.
이번에도 역시 만제가 세운다.
문화 여인숙으로 돌아와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밖에 나가 저녁 먹자 하니,
만제가 이미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 식사비를 포함하여 숙식비를 지불했다고 안 된단다.
여인숙 음식이 선답자들의 종주기와는 달리 입에는 별로 맞지 않는 데다
나중에 술 한잔할 걸 생각해 다들 조금만 먹고 만다.
“교수님은 왜 동립씨만 좋아하고 저는 미워하세요?”
화서면의 한 호프집에서 닭튀김에 맥주를 마시며 만제가 시비(?)를 건다.
지난번 뒤풀이에 이어 이번에도 동립이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들어주면서
자기는 숙식비를 미리 지불했다고 핀잔만 준다며 투정이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만제의 동립 따라 하기인 것이다.
“교수님은 왜 만제만 예뻐하시고 저는 미워하십니까?”
“학교 다닐 때도, 만제한테는 A를 주신데 반해 저에게는 F를 주셨습니다.”
동립이 대간 길에 동참하기 시작하던 날 (고기리-매요리),
수정봉을 오르며 녀석이 느닷없이 내게 한 말이다.
세 사람이 먹을 물과 점심을 배낭 하나에 다 넣어 먼저 지고 가게 했더니,
녀석이 엄살떨다가 내게 한 방 먹이는 것이었다.
내게 장난치는 줄은 알고 있었으나 내심 적지 아니 당황하였었다. 태연한 척하며,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요령만 피우면서 학점 잘 받기 바랐었냐?
지금도 요령 피우려 하고 있지 않냐, 이너마!..”
“내가 F를 줘서 그나마 니가 정신 차리게 된 줄 알아라!”
하고 윽박질렀더니, 녀석이 재미있어 하며 수긍한다.
내가 당황해 하는 것을 눈치 채었는지,
그 이후로 심심하면 두 녀석이 번갈아 가며 내가 편애한다고 투정부리며 엉긴다.
만제의 재롱에 동립까지 가세한다. 즐겁다.
문득 올해 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 해직 교수의 석궁 사건이 떠오른다.
대학원 입시 문제 오류를 지적한 것이 괘씸죄에 걸려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가
법정 투쟁과정에서, 권력과 부에 길들여져 타락해 있는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쏜 사건이다.
그도 나처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공부 안한다고 듣기 싫은 소리하며 야단치고,
F 학점을 많이 주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를 성토하는 학생들의 집단서명을 근거로
교육자적 자질이 없다는 학교 당국의 주장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여 벌어진 일이다.
출세에 눈이 먼 사법고시 합격자들로 득실대는 법원의 현실에 우울해지는 사건이다.
학계 한 켠에서는 이 사건을 “바보들이 또라이를 잡았다.”고 풍자한다.
정의가 상실된 지 오래인 이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아주 잘 묘사한 풍자이다.
“학점은 교수가 임의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라며
학점에 엄한 스승을 지지하고 따라준 제자들이 내게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면서도 뭔가 씁쓰름해진다. 당연하게 여겨야 할 일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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